2009.02.23 14:47

모나미 볼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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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6/11/2013061101484.html?news_Head1



입력 : 2013.06.11 13:32 | 수정 : 2013.06.11 13:51


	볼펜에 적힌 숫자 153의 비밀을 아십니까
기사를 쓰다가 불현듯 책상 위에 있는 필기도구를 전부 일렬로 정렬해 보았다. 볼펜 3, 플러스펜 2, 젤러펜 1, 네임펜 3, 형광펜 1, 샤프펜슬 1, 모두 11자루였다. 이것을 제조사별로 분류했다. 그랬더니 볼펜 두 자루와 샤프펜슬 한 자루를 제외한 8자루가 모두 모나미 제품이었다. 네임펜과 형광펜을 자주 쓰면서도 이게 모나미사 제품인 줄을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이렇듯 문구 생활에서 모나미는 우리의 일부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4)는 필기구가 귀한 시대를 살아왔다. 베이비붐 세대는 저마다 필기도구와 관련된 가슴 저린 사연을 하나씩 갖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거친 흑연심 연필로 인해 필기를 하다가 공책이 찢긴 경험도 많다. 그 필기구의 중심에 모나미볼펜이 있다. 모나미볼펜은 바로 베이비붐 세대와 함께 성장해 올해로 50살이 되었다. 

모나미볼펜은 다음 네 가지 숫자로 압축된다. 153, 50, 36억, 48만6000.

이 기사를 읽는 독자의 책상에 최소 한 자루의 모나미볼펜이 있을 것이다. 그 볼펜에는 숫자 153이 보인다. 어, 153이 뭐지? 153은 모나미의 역사이면서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숫자이다. 

왜 153인가를 알려면 모나미 창업주 송삼석 회장을 잠시 만나야 한다. 송삼석은 1928년 전북 완주에서 났다. 올해로 여든다섯이다. 송삼석이 서울대 상학과 3학년 때 6·25 남침전쟁이 시작됐다. 이후 스물두 살 청년 송삼석이 겪어온 일들은 그 자체가 한국현대사다. 송 회장과 인터뷰를 하려 했으나 모나미 측은 “바깥 출입을 안 하신다”며 인터뷰가 어렵다고 밝혀왔다. 기자는 주변 취재와 송 회장이 남긴 자서전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이 터졌을 때 송삼석은 미처 남쪽으로 피란을 가지 못했다. 어느날 송삼석은 서울 종로 거리를 걷다가 인민군에 붙잡혀 의용군 입대를 강요받았다. 알겠다고 말하고는 위기를 모면한 송삼석은 서울에 있다가는 의용군에 끌려가 개죽음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날 밤 피란을 시작, 인민군을 피해 하루 100여리(40㎞)씩 걸어 고향인 완주군 삼례읍까지 걸어내려갔다. 

그는 삼례에서 형이 운영하던 병원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병원에 삼례읍 인민위원회 인민위원들이 들이닥쳤고 송삼석을 붙잡아간다. 송삼석은 인민재판에 회부되었고, 인민위원회는 그에게 세 가지 죄목을 뒤집어씌웠다. 봉화를 올려 유엔군에 삼례 소식을 알렸다, 삼례기독학생 암살대를 조직해 인민위원회 간부를 살해하려 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곧 삼례를 해방시킨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렸다는 혐의였다. 사형 선고를 받기 직전 빨치산으로 보내자는 결정이 내려져 유치장에 갇히게 된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지 유치장 간수가 그의 초등학교 친구였다. 송삼석은 간수에게 곧 국군과 유엔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알려줬고 자신이 죽게 되면 교도소 간부들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치장 간부들의 도움으로 탈출한 송삼석은 국군과 유엔군이 들어올 때까지 숨어 지내 결국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송삼석은 서울대 상학과를 졸업했다. 송삼석은 1960년 회화구류를 생산하는 광신화학공업을 창립했다. 일본에서 문구류를 수입해 판매하던 광신화학공업이 자체 기술로 처음 생산한 게 모나미물감이었다. 이어 두번째로 생산한 제품이 왕자파스였다. 당시 왕자파스와 모나미물감은 학생들에게 최고의 인기 상품으로 미술시간과 사생대회의 베스트셀러였다. 베이비붐 세대 중에 초등학교 시절 왕자파스나 모나미물감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1962년 5월 16일 서울 경복궁에서 국제산업박람회가 열렸다. 왜 5월 16일이었을까. 당시 군사정부는 ‘5·16혁명 1주년 기념’으로 국제산업박람회를 열었다. 광신화학공업은 수입원인 우치다요코(內田洋行) 측과 공동으로 박람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공동 부스에 앉아 있던 송삼석은 우연히 일본 업체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 안주머니에서 처음 보는 필기도구를 꺼내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일본 직원은 잉크를 찍지 않고도 계속 뭔가를 써내려갔다. 이게 볼펜과의 첫 만남이었다. 송삼석은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잉크를 찍지도 않고 저렇게 계속 쓸 수 있을까. 

당시 우리나라에는 필기도구가 붓, 연필, 잉크를 찍어 쓰는 펜, 만년필밖에 없을 때였다.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을 사용해본 사람이면 이게 얼마나 불편한지를 안다. 잉크를 찍어 쓰다 보면 글씨 굵기가 고르지 않다. 잉크가 많이 쏟아져 나와 노트에 번지기 일쑤다. 또한 책상 위에 잉크병을 두어야 하므로 흔들려 쏟아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모나미 창업자 송삼석 회장 photo 모나미
 모나미 창업자 송삼석 회장 photo 모나미
송삼석은 일본 직원에게 볼펜을 한번 써봐도 되겠냐고 했다. 볼펜을 써본 송삼석은 마음속으로 경악했다. 세상에 이런 펜도 다 있구나. 볼펜은 일본 ‘오토볼펜’사 제품이었다. 송삼석은 볼펜을 만들기만 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1962년 당시의 우리나라 1인당 GNP는 87달러,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기술력이 전무할 때라 볼펜 제작은 첨단기술에 속했다. 송삼석은 일본에서 파견나온 직원이 본사로부터 ‘계산기 10대를 팔고 오라’는 임무를 띠고 왔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적극 도왔다. 이를 고맙게 여긴 일본 직원의 도움으로 우치다요코사의 사장을 소개받았다. 우치다요코사 사장이 송삼석을 다시 오토볼펜에 소개했다. 당시 오토볼펜은 일본 볼펜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있었다. 

송삼석은 일본 ‘오토볼펜’을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오토볼펜측은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겨 유성잉크 제조기술만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1963년 5월 1일 국내 최초 볼펜이 생산됐다. 

송삼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볼펜 시제품을 만들고는 직원들에게 이름을 공모했다. 직원들은 모나미물감이 인기가 좋으니 그대로 모나미로 쓰자고 했다. 프랑스어로 ‘나의 친구’인 모나미. 이름은 monami로 정했지만 어딘가 허전했다. monami 뒤에 뭔가를 붙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송삼석은 아이디어 회의를 소집했다. 직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냈다. 

‘1963년에 태어났으니 모나미 1963으로 하자’ ‘5월 1일 태어났으니 모나미 501이 어떠냐’ ‘행운이 따르라는 의미에서 모나미 77로 하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그렇지만 송삼석의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그때 남자 직원이 “153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송삼석은 153을 반복해 보니 어딘가 익숙하고 발음하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 의미가 전혀 와닿지 않았다. 송삼석은 그 직원에게 도대체 153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 남자 직원은 화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화투에서는 갑오(9)가 최고인데 9를 만드는데는 225, 234, 135보다 발음하기에 153이 좋다는 얘기였다. 직원들이 “와~”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남자 직원에게 ‘뭐 그런 아이디어를 내냐’는 식으로 눈총을 주었다. 그런데 송삼석은 153이라는 숫자가 너무나 낯익어 저 숫자를 어디서 보았지 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송삼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로 뛰어갔다. 그리고는 성경을 찾아 요한복음 21장 11절을 펴들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 하신대,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볼펜에 적힌 숫자 153의 비밀을 아십니까
153은 기독교에서 예수의 말씀을 따르면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숫자였다. 송삼석은 이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전율했다. 더이상 고민할 게 없었다. 송삼석은 최초의 볼펜 이름을 모나미153으로 정했다. 송삼석은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하나님은 내게 153이라는 숫자를 통해 기업인이 일생을 통해 반드시 지켜야 할 상도(商道)를 일깨워 주었다”고 썼다. 

모나미153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0.7은 글씨체의 굵기가 0.7mm라는 뜻이다. 1963년 당시 모나미볼펜의 가격은 얼마였을까. 송삼석은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15원이고 신문 한 부 값이 15원이라는 점을 감안해 15원으로 정했다. 153에는 가격이 15원이고 광신화학공업의 3번째 제품이라는 뜻도 포함됐다. 

모나미볼펜153의 대성공은 회사 이름을 바꿔놓았다. 송삼석은 1967년 광신화학공업을 모나미화학공업으로 변경했고, 1974년에는 아예 ㈜모나미로 바꿨다. 1970년대 후반 모나미볼펜은 미국 수출을 시작했다. 주문자 상표부착방식(OEM)으로 모나미153을 500달러어치 수출했다. 모나미볼펜153은 미국에서 ‘monami 153 Pen-Tech’라는 브랜드로 팔렸다. 

매월 모나미볼펜153은 300만자루 이상이 팔린다. 지난 50년 동안 팔린 누적 모나미볼펜은 약 36억자루. 이것을 일렬로 늘어놓으면 지구 둘레를 12바퀴를 도는 것과 비슷한 48만6000㎞에 이른다. 50살이 된 현재 모나미볼펜 한 자루의 가격은 300원. 참고로 서울 시내버스 요금은 1150원이고 신문 한 부는 700원이다. 

모나미가 만들어낸 필기구는 볼펜153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인펜, 플러스펜, 네임펜, 보드마카가 모두 모나미가 만들어낸 히트상품들이다. 현재 모나미는 세계 10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모나미는 문구 생산뿐만 아니라 문구 유통업까지 사업 분야를 확대했다. 2012년 모나미 매출액은 1848억원. 이 중 모나미볼펜153의 매출액은 10~11%에 이른다. 

송삼석은 1997년 모나미를 장남 송하경에게 물려주었다. 송하경 사장은 연세대 응용통계학과를 나와 말단사원으로 출발해 과장·차장을 거쳐 이사를 지냈다. 현재 창업자 송삼석은 회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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