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 금요일 易地思之 (역지사지)
역지사지 (易地思之) 라는 말은 ‘입장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지 못하여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반응할까?” 라는 일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그냥 다른 것이다’ 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 뿐이지 꼭 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1위가 되었습니다. 하루사이에 이태리와 중국을 제치고 감염자 수가 8만6천명이 훌쩍 넘어서 중국과 유럽등의 여행객들을 막은 미국을 앞으로는 어쩌면 모든 세계 사람이 미국발 여행객들을 차별대우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우선적으로 하는 남부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들을 이제는 멕시코에서 먼저해서 미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을 수 도 있을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역지사지는 상대방 입장에서 사물을 헤아려서 그들을 이해하고, 또 내가 그 입장이 되므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도 어쩌면 강건너 불구경 하듯 시간을 보내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면 어땠을까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역지사지의 교훈을 주는 어느 이야기 즉, 쫓아내는 자가 나중에 쫓기는 자가 되는 일이 다윗왕 시대에서 있었습니다. 세상은 의외로 강자가 약자가 되고 약자가 강자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윗왕에게 패륜적인 행동을 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이란 이름이 어감이 좋지않은데 그 이유는 한글로 ‘압살(당할)롬’으로 읽힐 수 있는 일종의 언어의 유희 (word play)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하가운데 ‘시므이’는 성전에서 물러나는 다윗왕에게 용서할 수 없는 폭언을 합니다. (삼하 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이때 상황은 다윗왕과 그 신복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입장이 바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제 완전히 입장이 바뀌어져서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다시 다윗이 시므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시므이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삼하 19:19). 이 말을 들은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단칼에 그를 없애려 하였으나, 다윗은 그를 용서합니다. 그후에 솔로몬왕 재위때에 시므이는 그의 과실로 인하여 목숨을 잃습니다. (왕상 2:36-46). 만약에 시므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에게 은총을 입어 그의 목숨을 건진 것을 생각하고 조신하였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지내온 경험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고 남의 입장에서 서서 사물을 바라보는 일이 정말 필요합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상대방에게 중요할 수도 있고,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비수와 같이 가슴에 꽂히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난리속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이 때에 더욱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된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여 나의 마음에 임재하여 주옵소서.
엡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역지사지 (易地思之) 라는 말은 ‘입장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지 못하여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또는 “왜 그렇게 생각하고 반응할까?” 라는 일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고 그냥 다른 것이다’ 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 뿐이지 꼭 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이제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1위가 되었습니다. 하루사이에 이태리와 중국을 제치고 감염자 수가 8만6천명이 훌쩍 넘어서 중국과 유럽등의 여행객들을 막은 미국을 앞으로는 어쩌면 모든 세계 사람이 미국발 여행객들을 차별대우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이 제일 우선적으로 하는 남부국경에 장벽을 세우는 일들을 이제는 멕시코에서 먼저해서 미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을 수 도 있을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역지사지는 상대방 입장에서 사물을 헤아려서 그들을 이해하고, 또 내가 그 입장이 되므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좋은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도 어쩌면 강건너 불구경 하듯 시간을 보내지 말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면 어땠을까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역지사지의 교훈을 주는 어느 이야기 즉, 쫓아내는 자가 나중에 쫓기는 자가 되는 일이 다윗왕 시대에서 있었습니다. 세상은 의외로 강자가 약자가 되고 약자가 강자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윗왕에게 패륜적인 행동을 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압살롬입니다. 압살롬이란 이름이 어감이 좋지않은데 그 이유는 한글로 ‘압살(당할)롬’으로 읽힐 수 있는 일종의 언어의 유희 (word play)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하가운데 ‘시므이’는 성전에서 물러나는 다윗왕에게 용서할 수 없는 폭언을 합니다. (삼하 16: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이때 상황은 다윗왕과 그 신복들에게 돌을 던지면서 저주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입장이 바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이제 완전히 입장이 바뀌어져서 압살롬의 난이 평정되고, 다시 다윗이 시므이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시므이는 이렇게 간청합니다. “왕께 고하되 내 주여 원컨대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옵시며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삼하 19:19). 이 말을 들은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단칼에 그를 없애려 하였으나, 다윗은 그를 용서합니다. 그후에 솔로몬왕 재위때에 시므이는 그의 과실로 인하여 목숨을 잃습니다. (왕상 2:36-46). 만약에 시므이가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에게 은총을 입어 그의 목숨을 건진 것을 생각하고 조신하였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는 지혜가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배경도 다르고 지내온 경험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고 남의 입장에서 서서 사물을 바라보는 일이 정말 필요합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이 상대방에게 중요할 수도 있고, 내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의 말이 상대방에게는 비수와 같이 가슴에 꽂히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난리속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이 때에 더욱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된다면 아마 우리 사회는 더욱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여 나의 마음에 임재하여 주옵소서.
엡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