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월요일
니고데모
지난 안식일 바로 전 안식일에 (3/14)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10명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설교를 마치면서 다음 주 부터는 예배를 잠시 중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오프라인 (off-line)의 예배를 할 수 없었던 그 안식일이 지난 안식일 (3/21)이었습니다. 아주 낯선 안식일이었습니다. 3/14일 안식일과 3/21 안식일 사이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Bay Area의 몇 개의 카운티 (county)에서 Shelter-in-place order (외출금지령) 그리고 이윽고 주 전체가 Stay-At-Home order (자가대피령) 이 내리고, 미국에 비상령(State of Emergency)이 내렸습니다. 이제 사회적 거리 유지 (약 2미터)와 꼭 필요한 곳 (약국, 식료품점 등)을 제외하고는 영업을 할 수 도 없는, 자유롭게 모여서 여가활동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상한 일상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교회 안가도 편하게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 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실없는 걱정도 해 봅니다. 그래도 잘 준비된 양질의 예배 (worship service)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가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찾으시고 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니다.
성경에 ‘니고데모 (Nicodemus)’ 에 관한 이야기는 3번 등장합니다. 맨 처음에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비밀리에 찾아간 요한 복음 3장에 나옵니다. 그의 secret interview (비밀담화)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4). 아마 이날밤에 니고데모는 대단한 충격으로 예수님과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됩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7장에 등장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요 7:50) 여기서 니고데모는 지도자들과 함께 예수에 관하여 논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등장합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39). 예수를 따랐던 수많은 제자들, 5000명을 먹이신 그 군중들, 아주 가까이에서 그분을 섬겼던 12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그 때에 니고데모는 자기의 할 일을 착실히 한 것입니다.
이렇듯 위기 때에 우리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온 세상이 새파란 여름에는 (캘리포니아는 좀 예외가 되겠지만) 온통 나무, 들, 풀들이 푸르름을 간직하지만, 계절이 바뀌어 겨울철이 오면 나무들이 그들의 옷을 벗을 때에 상록수만이 푸르름을 간직합니다. 위기의 때에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니고데모와 같이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마땅히 걸어가야할 길을 걸어가며, 신앙의 양심으로 해야할 일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흔들림 없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니고데모
지난 안식일 바로 전 안식일에 (3/14) 교회에서 마지막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10명 참석하였습니다. 그날 설교를 마치면서 다음 주 부터는 예배를 잠시 중지하기로 하였습니다. 바로 오프라인 (off-line)의 예배를 할 수 없었던 그 안식일이 지난 안식일 (3/21)이었습니다. 아주 낯선 안식일이었습니다. 3/14일 안식일과 3/21 안식일 사이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Bay Area의 몇 개의 카운티 (county)에서 Shelter-in-place order (외출금지령) 그리고 이윽고 주 전체가 Stay-At-Home order (자가대피령) 이 내리고, 미국에 비상령(State of Emergency)이 내렸습니다. 이제 사회적 거리 유지 (약 2미터)와 꼭 필요한 곳 (약국, 식료품점 등)을 제외하고는 영업을 할 수 도 없는, 자유롭게 모여서 여가활동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상한 일상이 새로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를.
교회 안가도 편하게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것이 점점 익숙해 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실없는 걱정도 해 봅니다. 그래도 잘 준비된 양질의 예배 (worship service)에 온라인으로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 가를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찾으시고 또 함께 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금 마음에 새겨봅니다.
성경에 ‘니고데모 (Nicodemus)’ 에 관한 이야기는 3번 등장합니다. 맨 처음에는 한밤중에 예수님을 비밀리에 찾아간 요한 복음 3장에 나옵니다. 그의 secret interview (비밀담화)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 3:4). 아마 이날밤에 니고데모는 대단한 충격으로 예수님과의 대화를 평생 잊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됩니다.
두 번째는 요한복음 7장에 등장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요 7:50) 여기서 니고데모는 지도자들과 함께 예수에 관하여 논쟁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등장합니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요 19:39). 예수를 따랐던 수많은 제자들, 5000명을 먹이신 그 군중들, 아주 가까이에서 그분을 섬겼던 12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진 그 때에 니고데모는 자기의 할 일을 착실히 한 것입니다.
이렇듯 위기 때에 우리의 신앙이 드러납니다. 온 세상이 새파란 여름에는 (캘리포니아는 좀 예외가 되겠지만) 온통 나무, 들, 풀들이 푸르름을 간직하지만, 계절이 바뀌어 겨울철이 오면 나무들이 그들의 옷을 벗을 때에 상록수만이 푸르름을 간직합니다. 위기의 때에 우리는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니고데모와 같이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마땅히 걸어가야할 길을 걸어가며, 신앙의 양심으로 해야할 일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주여! 흔들림 없이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주옵소서!
시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