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3 23:00

우리가 늙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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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는 매년 4개월간 저승의 여왕으로 살아야 한다.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 세티의 그림 프로세피나/페르세포네(1874). [위키피디아]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는 매년 4개월간 저승의 여왕으로 살아야 한다. 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 세티의 그림 프로세피나/페르세포네(1874). [위키피디아]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에겐 아름다운 딸 페르세포네가 있었다. 저승의 신 하데스가 반해 그녀를 납치하자 데메테르는 슬픔에 빠져 더 이상 곡식을 보살피지 않으니 온 세상이 황무지로 변해 인간은 신에게 제물을 바칠 수 없게 된다. 드디어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딸을 엄마에게 되돌려주라고 명령하나 이미 저승 과일의 씨앗 4개를 먹어버린 페르세포네는 매년 4개월을 저승의 여왕으로 살아야 했다. 딸이 없는 4개월간 슬픔에 빠지는 데메테르는 겨울로 세상을 황폐하게 만들지만, 페르세포네가 되돌아오는 봄엔 만물에 꽃이 피고 생명이 부활한다.

미노아(Minoa)와 미케네(Mykene) 문명 때부터 알려졌던 ‘페르세포네의 납치’는 기원후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지우스가 기독교 영향 아래 폐쇄할 때까지 2000년 동안 고대 그리스 최고의 비밀인 ‘엘레우지니아의 신비’라는 이름 아래 숭배되었다. 엘레우지니아의 신비 중 최고의 신비는 선택된 극소수에게만 알려주었는데, 그 비밀을 세상에 밝히는 자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운 것이었을까? 아마도 풍성한 여름과 가을이 겨울엔 메마르듯, 모든 인간의 운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되새겨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대단하고 잘난 사람도 우선 태어났으면 죽어야 한다. 처음부터 다 정해진 연속극이다. 하지만 어쩌면 죽음은 끝이 아닐 수도 있다. 페르세포네가 죽음의 세상에서 돌아와 다시 봄이 되고 생명이 부활하듯, 인간에게도 부활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삶은 죽음을 부르지만, 죽음은 다시 새로운 삶으로 재시작한다는 영원한 존재의 가능성을 엘레우지니아의 신비는 보여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왜 늙는 것일까? 궁극적으로 텔로미어라고 불리는 염색체 끝 부분(왼쪽 그림에서 빨간 부분)이 세포 분열마다 점점 짧아지기 때문이다.모든 인간은 죽는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도 죽는다. 너무나 당연하고 불편한 진실이기에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 사실을 되새기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3000년 전 미케네인들과 공감하게 된다. 죽음은 슬픔이며 희망이라고. 하지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슬퍼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의 죽음이 싫고 슬프다는 말은 논리적이지 않다. 죽으면 나는 없고 싫거나 슬픔을 느낄 수 없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걸 슬퍼하거나 싫어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상상할 때 마치 내가 그 무언가를 직접 지각하듯 상상하지만, 죽음만큼은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장례식은 내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죽으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슬퍼할 것이기에, 그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죽으면 나는 없고,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나는 느낄 수 없다. 물론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는다면 나도 슬플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슬픔을 느낀다면 그건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고, 나의 슬픔은 살아 있는 내가 느끼는 헤어짐에 대한 슬픔일 뿐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죽음 후의 무(無) 그 자체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죽음 후의 무는 어쩌면 하찮을 정도로 무의미할 수도 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이미 수십억 년 동안 존재는 존재했고,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주는 수십억 년 동안 (얄미울 정도로) 잘 굴러갈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걸 우리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듯이 우리가 더 이상 없는 죽음 그 자체를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죽음은 태어나기 전과 같다.

그래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건 삶과 죽음의 전이점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이건 충분히 걱정할 만한 문제다. 1606년 가톨릭 지지자로 제임스 1세 영국 왕을 국회의사당에서 폭약으로 암살하려다 잡힌 가이 포크스(Guy Fawkes)는 hanged, drawn and quartered, 그러니까 거의 죽음 직전까지 목을 매달았다가 다시 반 익사할 때까지 물에 집어넣었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성기와 배를 자른 후 사지를 찢어버리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방법으로 사형되었다.(필자 설명=16, 17세기의 공식 사형이었던 ‘익사 시키기’는 영어로 drawn이다. 일반에서는 drown이라고도 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둘 다 가능하다.)

우리가 이런 걸 두려워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하버드대의 스티븐 핑커가 ‘폭력에 관한 짧은 역사’에서 보여주었듯,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을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인류는 계몽주의와 산업화를 거치며 점차 폭력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21세기엔 매일 약 15만 명 정도가 죽지만, 전 세계적으론 3분의 2, 그리고 선진국 중에서는 90% 이상이 비폭력적인 ‘자연적 노화’ 현상으로 죽는다. 확률적으로 우리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죽음보다 노화를 더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 노화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늙어야 하는가? 왜 얼마 전까지 뛰어놀던 귀여운 아이는 어른이 되어야 하고, 영원한 사랑을 간직하겠다던 두 젊은이는 노인으로 변해야 할까?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각 염색체는 텔로미어(말단 소립, telomere)라는 DNA 조각으로 끝난다.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세포분열을 통해 DNA를 복제하는데, 세포 끝 부분인 텔로미어는 복제되지 않아 궁극적으로 분열 때마다 점차 짧아진다. 통계적으로 고양이는 8번, 말은 20번, 인간은 약 60번 정도 세포분열을 할 수 있다. 더 이상 분열하지 않으면 세포는 노화해 결국 우리는 죽는다. 그럼 텔로미어가 잘리는 걸 막을 순 없을까? 다행하게도 가능하다. 텔로머라아제(말단소립 복제효소, telomerase)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세포가 분열해도 텔로미어의 길이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 암세포가 가장 유명한 경우다. 텔로머라이제가 활성한 암세포들은 끊임없이 세포분열이 가능하다. 암세포들엔 영원한 ‘삶’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가 바라는 건 암세포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젊고 건강한 ‘나’라는 존재로 영원히 살고 싶을 것이다.

앞으로 먼 미래에 완벽하고 안전한 텔로머라이제가 개발되었다고 상상해 보자. 인간의 세포는 영원히, 그것도 완벽하고 안전하게 분열할 수 있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희망하는 세상일까? 영원히 젊은 인간들은 영원히 번식할 수 있으므로 인구 증가, 식량문제 같은 실용적인 문제들이 생길 것이다. 물론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우선 영원한 삶은 법적으로 생식력을 포기한 자에게만 줄 수 있겠다. 내가 영원히 살기 위해선 내 후손의 삶을 포기하면 된다. 내 후손의 삶은 어차피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해마다 약 1000억t의 탄소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중 오로지 5억t 정도만 생태계에서 자연스럽게 생산된다. 그러면 나머지 995억t의 탄소들은 어디서 올까? 바로 죽은 생명체의 시체들을 재활용하며 만들어진다. 죽음이 없으면 생명에 필요한 탄소의 200분의 1만 만들어진다. 거꾸로 죽음이 있기에 지구엔 약 200배의 더 많은 삶이 만들어진다. 삶은 죽음으로 끝나지만, 죽음 없는 세상에선 새로운 삶이 200배 덜 가능해진다.

뇌 안의 모든 정보를 읽고 복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원한 자아를 가질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학술 사이트 `33번 광장`]육체의 파괴를 ‘나’의 끝으로 걱정하는 인간들에게 엘레우지니아의 신비는 재생과 부활을 통한 자아의 영원한 삶이라는 희망을 주었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영원히 존재하는 건 나의 영혼이 아니라 재활용되는 나의 탄소들이다. 하지만 ‘나’는 내 탄소들이 아니다. 나의 몸이라는 3차원적 공간에 우연히 몇십 년 동안 뭉쳐 있던 탄소들이 다시 흩어지고 새롭게 짝짓기를 해 재활용된다 해도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나는 나고, 나는 나의 기억들이며, 나는 나의 자아다. 자아, 기억, 감정의 모든 것은 우리들의 뇌 안에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나의 뇌를 복제할 수는 없을까? 뇌 안의 모든 정보를 복제해 새로운 생명체에 심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엘레우지니아의 신비이지 않을까?

인간의 뇌는 약 1.5kg 무게와 1260㎤의 부피를 가지고 있으므로, 대략 1.34813?1017 Joule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물리학자 야콥 베켄슈타인이 제안한 방법을 사용하면 특정 공간에 특정 에너지가 가질 수 있는 최대 정보량의 한계를 계산해 낼 수 있다. 그 방법에 따르면 뇌는 최대 2.58991?1042 비트의 정보를 가질 수 있다. 오늘날 지구의 모든 디지털 정보량이 합쳐 약 3제타(1021) 바이트라는 걸 생각하면 천문학적으로 많은 정보량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이론적인 최대값이고, 만약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해마만 복사한다면 조금 더 가능성 있어 보이는 2.5페타(1015)바이트 정도만의 정보가 필요할 것이라는 결과가 있다. 레이먼드 커즈와일(Raymond Kurzweil) 같은 미래학자는 그래서 먼 미래엔 마치 헌 컴퓨터에서 새로운 컴퓨터로 파일을 복사하듯 ‘나’를 영원히 (양자 또는 DNA 컴퓨터에?) 복사해 재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설한다. 나는 복사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2+2=5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2+2=4일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는 것같이 필연적인 죽음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완벽한 텔로머라이제 또는 완벽한 뇌 복사 같은 과학적 엘레우지니아의 신비들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걸 잘 아는 우리는 죽음이 꼭 필연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오늘, 2013년에 우리가 죽음에 대한 슬픔을 가진다면, 그건 어쩌면 나는 누릴 수 없지만 수백 또는 수천 년 후 누군가 다른 이가 가지게 될 영원한 삶에 대한 질투심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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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했다. 이후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낸 뒤 2009년 말 KAIST 전기 및 전자과 정교수로 부임했다. 뇌과학·인공지능·물리학뿐 아니라 르네상스 미술과 비잔틴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김대식 KAIST 교수 dskim@ee.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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